청렴하게 사는 것이 쉬울까? 부정하게 사는 것이 쉬울까? ‘청렴’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아 처벌하거나 혐의를 입증할 수 없는 수준이고, ‘부정’은 현행법과 규정을 위반하여 정도의 경중을 떠나 징계 이상의 처분을 받는 수준, 쉽게 말해 ‘김영란법’의 위반 여부에 따라 두 가지를 구분한다고 가정할 때 과연 어떻게 사는 게 더 쉬울까? 나에게는 둘 다 어렵다.

청렴하게 살기 어려운 이유는 일단 내용도 어렵고, 다양한 변수를 모두 통제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공무원 신분으로 여러 사적 인간관계를 맺고 살지만, ‘김영란법’을 통째로 외워 다닐 수도 없고, 개별 상황에 맞춤 적용하기는 더 어렵다. 심지어 다 알고 있다 해도 그것을 완벽히 이행하기도 어렵고, 주변사람을 관리하는 일 역시 어렵다. 의지와 상관없이 엉뚱한 일이 벌어지기도 하며, 이미 벌어진 일을 수습하기는 더 힘들다. 많이 알아야 지킬 수 있고 알수록 더 어려운 것이 청렴이다.

부정하게 살기 어려운 이유는 양심의 가책과 더불어, 도덕적 잣대를 기준으로 한 사회의 다양한 감시 기능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눈치’가 보여서다. 타인의 눈치란 때로는 우리를 개성 없는 평범함 속에 가두는 속박이지만, 때로는 다듬어지지 않은 속성들을 정상화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밖에서의 내 행동과 혼자 있을 때의 행동이 완벽히 일치하는 사람은 없을 것인데, 이 사회적 감시 기능의 결과물인 ‘눈치’가 크게 작용하는 것이 원인이다. 그러나 청렴하게 사는 것에 비해 덜 알아도 되고, 안 걸리면 그만이기 때문에 눈치를 적게 보는 사람들은 부정하게 사는 것이 쉬울 수도 있다.

도대체 청렴은 무엇이기에 이토록 지키고 살기 어려운 것일까? 인간은 본래 선하다고 하는데, 청렴과 선함은 아무런 관계가 없고 그저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적 가치일까? 또는 인간의 유전자에 탐욕이란 본능이 새겨져 있어서, 삶이라는 것은 유전자가 지휘하는 대로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일까?

진화론적 관점 볼 때, 우리의 대부분은 탐욕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을 확률이 높다. 자신이 가진 영토와 자원, 노예, 식량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갖고 싶은 욕심을 발단으로 치러야 했던 전쟁의 수는 헤아리기도 힘들다. 더 큰 탐욕으로 무장해서 승리한 자들은 번식에 유리한 입지를 선점했고, 그들이 우리의 조상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사냥과 채집으로 식량을 얻었던 시절의 호모 사피엔스도, 생존과 번식이라는 이기적 욕심을 채우기 위해, 수많은 다른 종을 멸종으로 몰아넣은 배타적 성격의 조상이었다. 이는 생태계를 파괴하는 치명적 도구였으나, 경쟁적 원시 환경에서 우리 종을 살아남게 해주었다. 오늘날 자본주의가 공산주의와의 경쟁에서 일방적으로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바로, 인간의 탐욕이라는 것에 다수가 동의한다.

이처럼 우리가 탐욕적 조상의 후손이라서, 유전자의 영향으로 청렴보다 부정을 저지르기 쉬운 존재로 가정하자. 그렇다면, 현대사회가 청렴함을 사회의 기본적 가치로 내세우는 일은, 스스로 조절하기 힘든 인간의 유전적 특질을 이겨내라고 강요하는 이율배반적 사고 아닐까?

그러나 이율배반적 사고의 강요는 청렴뿐만 아니라 사회 다방면에 존재한다. 가족이나 친구의 피해에 대한 보복성 폭력과 살인의 금지, 생명을 구하고 금전도 얻을 수 있는 장기매매의 금지, 가장 왕성한 성욕을 보이는 10대 남성에게 결혼과 성관계를 사실상 금지하고 있는 사실 등에 비추어 볼 때, 사회는 개인의 감정적, 생물학적인 원초적 본능들을 법과 제도를 통해 제어함으로써 정상적 범위 속에서 살아가게 만든다. 비록 인간의 유전자에 부정과 탐욕의 그을림이 있더라도, 법과 제도를 만들어 시행함으로써 이를 극복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법과 제도를 잘 갖춘다면 의식은 따라가기 마련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우리는 생태계와 환경, 흡연, 음주운전, 인권, 민주주의, 성(性) 등의 분야에서 놀라운 의식적 진보를 이루었다. 교육 수준이 높아진 데 따른 이유도 있겠지만, 법과 제도의 수립과 보완을 통해 의식수준이 자연히 뒤따른 결과로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음주운전은, 처벌법의 강화와 홍보를 통해 미흡한 의식이 제도를 좇아가는 경우 중 하나이다.

청렴의 이행을 구체적으로 법제화한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도 2년 반이 다 되어간다. 군민들의 체감수준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공직 내부의 의식은 약간의 과장을 더해 ‘천지개벽’ 수준으로 진화했다. 지인과 같이 먹던 밥, 주고받던 선물처럼 너무나 당연했던 것들이 이제는 불편해져 꺼리는 일이 되었다. 갈 길이 멀다지만, 법의 보완과 현재 속도의 변화가 지속된다면, 10년 후에는 청렴의 보편적 정착을 기대해볼만하다.

나도 아직 의식이 부족해 청렴을 이행하기 어려운 속물이다. 유전자가 지휘하는 내 안의 많은 욕심을 억누르며 남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보통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청렴에 대해 필요성을 못 느끼거나, 여타 이유로 사회적 기준치에 미달하는 의식을 가진 나와 같은 사람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적 장치를 정교하게 개선해 나간다면 의식도 뒤따를 테고, 이를 통해 언젠가 청렴한 세상에 정착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져도 되지 않을까?

서두의 내용처럼 현대사회에서 청렴함을 유지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시도이다. 그럼에도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은, 우리는 공동의 목표를 지향하며 비교적 잘 협력해 왔다는 점 때문이다. 나라가 망할 것처럼 떠들썩했던 IMF 구제금융, 주 5일제 시행, 미국 소고기 수입 등의 전례에서 봤듯이, 우리는 수많은 위기와 불확실성을 다스려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증명해왔다.

그래서 나는 우리 인간이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을 통제할 수 있고, 청렴한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충분한 경험과 이성적 잠재력을 지녔다고 믿는다. 사실 이를 믿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다. 더 촘촘하게 짜일 법망과 사회제도의 길을 묵묵히 걷다보면, 의지와 상관없이 청렴이란 목적지에 자동으로 다다를 테니까...

함양군청 행정과 감사담당자 석준태

관련기사

저작권자 © 경남열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