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젓갈이 싫다고 했잖소?” “알았어요. 다음부터는 밥상에서 젓갈은 빼고 올릴게요.” 유달리 반찬 투정이 심한 한 가정의 남편과 그 남편이 싫어하는 젓갈을 반찬으로 상에 올린 아내 사이에 급기야 부부싸움이 벌어지기 직전까지 간 한 가정의 저녁 식사 때의 풍경을 상상해 봤습니다.

세상에는 혼자 사는 삶은 없습니다.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면서 대화를 통해 소통과 협치가 이루어집니다. 함께하는 관계를 좁은 범위에서부터 나열해보면 부부, 가족, 친지에서 시작해 넓게는 이웃, 직장, 면민, 군민, 더 크게는 한국인, 인류, 동물 등으로 외연을 확장할 수 있습니다.

‘함께 더불어 살다’에서 ‘더불다’의 의미에 대해 찾아보았습니다. '더불다'는 한자어 여(與)의 어원은 어떤 물체를 '함께' 움직이거나 조종하는 네 개의 손의 모습에 기인합니다. 즉 두 사람 이상이 모여 어떤 일을 함께 이루어 감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협업관계를 바탕으로 어떤 공간을 함께 공유하는 이들을 좋은 의미에서 초록동색(草綠同色)이란 말로 표현합니다. 같은 걸 추구하며 한 공간을 공유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초색(草色)과 녹색(綠色)은 같은 색이며, 풀색이 녹색이고 녹색이 바로 풀색입니다.

이를 좀 확장하면 같은 공간에서 같은 문화를 함께하는 거창군민 모두가 초록동색이라 할 수 있지만 그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로 그 초록들 사이에서 같은 모습은 절대 발견할 수 없습니다. 비슷할 수 있고 너무나 다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전국의 모든 지자체에는 그 지역의 화두(話頭)가 되어 있는 난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 난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서 화광동진(和光同塵)이란 구절을 찾았습니다. ‘빛(光)을 부드럽게(和)해서 티끌(塵, 나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한다(同)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화광(和光)은 초록(草綠) 간의 서로 다름으로 인해 생긴 난제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제시해 봅니다. 자기의 주장과 고집을 꺾고 그 강한 빛을 온화하게 하여 티끌과 먼지와 함께 어울린다는 뜻입니다. 아침 햇빛이 창으로 들어올 때 하늘거리는 먼지와 아침햇살이 어울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아침 햇살이 아름답다고 느껴질 것입니다.

도덕경에서 빛을 부드럽게 하는 화광(和光)이라는 처방(處方)은 나와 전혀 다른 가치관에 대한 수용(受容)과 인정(認定)입니다. 비록 내가 추구하는 기준에 부합한 가치는 아니지만 그것이 곧 절대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화광(和光)이라는 처방을 통해 거창 군민이 대동(大同: 크게 함께 함, 크게 더불음)하는 모습이 오리라 믿고 싶습니다.

그럼 여기서 서두의 반찬 얘기로 돌아가면 젓갈을 싫어하는 남편의 저녁 밥상 위의 모든 반찬이 젓갈로만 구성되어 있지는 않고 김치, 나물, 된장국도 있을 것입니다.

아내와 남편의 기호(嗜好)가 서로 다르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받아들이면서 밥상 전체를 바라본다면 저녁 밥상은 영양 가득한 건강밥상으로 보이지 않을까요?

다양함이 존재하는 현대사회에서 견해의 차이는 선악(善惡)이나 시비(是非)의 문제이기보다는 이와같이 기호(嗜好)의 문제일 때가 많습니다. 이 화광(和光)을 통해 거창군민 모두가 초록동색(草綠同色)되어 크게 거창하게 화합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거창군 행정과 행정담당 허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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