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사마천의 사기(史記)를 만나는 시간

고추잠자리가 파란 하늘을 날고 코스모스가 바람에 한들거린다.

들판에는 곡식이 익어가고 골목에는 붉은빛 석류가 탐스럽게 달렸다.

추석 명절을 앞둔 농장에는 거창의 맛있는 가을, 사과(홍로) 수확이 한창이다.

코로나19 때문에 계절이 오가는 줄도 모르고 살아왔다.

강변을 걷다가 귀뚜라미 울음소리에 책 읽기 좋은 계절이 왔음을 알았다.

필자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아버님께 자주 들었던 말씀이 있다.소년이로 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 소년은 늙기 쉬우나 학문은 성취하기 어렵다.

일촌광음 불가경(一寸光陰不可輕), 눈 깜짝할 순간의 시간도 가볍게 여기지 말라.

미각지당 춘초몽(米覺池塘春草夢), 연못가의 봄풀은 꿈에서 아직 깨어나지도 못했는데.

계전오엽 이추성(階前梧葉已秋聲), 섬돌 앞 오동나무는 이미 가을 소리를 낸다.

성리학을 집대성한 송나라 주희(朱熹)의 권학문(勸學文)에 나오는 첫 구절이다.

시간을 아껴 쓰고 부지런히 공부하라는 뜻이 담겨있다.

필자의 아버님께서는 고된 농사일을 하시면서도 저녁에는 명심보감을 읽거나 먹을 갈아 붓으로 한자를 썼다.

“너는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세월은 빨리 지나간다, 사람은 평생 공부하며 살아야 한다.”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말이 50세를 앞두고서야 조금 이해가 간다.이제는 필자가 옛날 아버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아이들에게 하고 있다.

‘신은 인간을 시간으로 가르친다’는 말처럼 자식들도 어른이 돼야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던 산골, 그 시절에 우리 집에는 세계문학전집이 있었다.

삼촌과 누나가 읽었고, 뒤를 이어 나도 읽었다.

직장생활 24년이 넘는 동안 2000여 권의 책을 읽었다.

그중 으뜸은 태사공(太史公) 사마천의 《사기》다.

사기는 사마천이 약 2000년 전에 52만 6500자, 130권으로 엮은 중국 3000년 역사책이다.번득이는 삶의 지혜가 가득한 고사성어와 시공을 초월한 통찰력이 그대로 녹아있다.

“옛날을 보고서 지금 세상을 검증하고, 인간사를 참고하여 흥망성쇠의 이치를 살핀다.”

“사람을 얻는 자는 흥하고, 사람을 얻지 못하는 자는 망한다.”

필자는 사마천의 사기를 10년 전에 만났다.지금은 삶의 지침서이자 동반자다.

읽으면 읽을수록 무릎을 치게 하는 지혜의 영역에 빠져든다.

나이에 따라서 기분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다른 맛이 난다.

힘들 땐 위로가 되고, 좋은 일이 있을 때는 겸손을 풀리지 않는 문제 앞에서는 용기를 주는 독서보감(讀書寶鑑)이다.

인간학 교과서, 사마천의 사기를 읽은 사람을 조심하라는 말이 있다.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해도 인간의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가을, 더나은 판단과 지혜를 얻고 싶다면 사마천을 만나보자.

거창경찰서 정보안보외사과 경위 문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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