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천사 염소할머니의 추억

학교바로세우기 운동본부 상임대표 전) 안의고등학교장 김상권

2012년 3월 안의고등학교 입학식장에 울려 퍼진 감동적인 말 한 마디 ‘나는 못 배웠지만 너희들은 열심히 배워야 한다이’ 순간 식장은 조용해지고 학생들은 숙연해 졌다.

기부천사 염소할머니가 1억원 장학금 증서를 전달하는 자리에서 한 말씀이다.

30여년간 홀로 염소를 키워 모은 전 재산을 고향 후배를 위해 선뜻 내 놓으신 염소할머니의 기부정신은 학생들의 마음에도 기부바이러스를 전파했다.

어느 날 학생들이 찾아와서 ‘고마움을 잊어버리면 배움의 도리가 아니다’면서 자기들도 능력에 맞게 이웃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하더니, 그 결과물이 전교생 '1인 1나눔 계좌 갖기 운동'으로 나타났다. 이웃돕기의 한 방법으로 봉사단체의 나눔 계좌에 동참하는 것이다. 참으로 대견하고, 교육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이 운동에 선생님들과 학부모님들도 참여했다. 지금 생각해도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40년 교직생활에서 가장 보람있는 시간이었다.

염소할머니의 사연이 세상에 알려지자 많은 언론에서 기부천사라는 애칭으로 할머니의 아름다운 기부를 칭송하고 청와대에서도 대통령이 친서를 보내 위로했다.

이렇게 할머니를 존경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할머니는 함양군민추천으로 국민포상과 청룡봉사상의 수상자가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상 받을 자격 없다’하시며 한사코 손사래를 치는 것이다. 난감한 일이었고, 할머니를 설득하는데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제 시상식에 가야 하는데, ‘서울에는 언제 가 보셨나요, 입고 갈 옷은 있습니까?’ 물었더니 할머니가 그 때 입고 있던 옷(일바지와 스웨터)을 가리키며 ‘이 옷 입고 가면 된다’ 고 하신다.

서울에는 30년 전에 내려와서 이곳을 한 번도 벗어나 보지 못했다 는 말씀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 아픈 일이다.

본교 선생님들이 마음 모아 한복 한 벌을 준비했다. 족두리 쓴 이 후 처음 입어 본다는 한복을 입고 좋아하시는 할머니를 모시고 시상식에 다녀온 기억이 생생하다. 고속도로를 가면서 ‘언제 길이 이렇게 좋아졌노?’ 하시는 말씀이 아직도 귓가를 맴돈다.

몇 년 전, 교육장으로 있을 때 찾아 뵈었는데 지금은 어디에 계신지 알 수가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조카님도 요양원으로 가셨다는 것 외에는 잘 모르고 계시니, 건강하셔야 할 텐데... 가족이 함께 모이는 추석 명절이 되니 더 생각나는 할머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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