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에게서 배운다.

학교바로세우기운동본부 상임대표 / 전) 경남교육청 교육국장 김상권

2019년 퇴임을 하고 잠시 시골에서 텃밭을 가꾸면서 소일한 적이 있다. 씨앗을 뿌리고 잡초가 나면서 풀과의 전쟁은 시작되었다. 멋진 수확을 기대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여의치 않은 일로 잠시 텃밭을 찾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다.

보름 쯤 지나 텃밭에 가 보니 이미 풀은 곡식을 완전히 집어 삼키고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와 있었다. 90세 어머니께서 선생님이 매일 학생을 마주하며 가르치는 일과 같이 농작물도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면서, 농사도 아무나 짓는 것이 아니니 친구들도 만나면서 보람 있는 시간을 보내라는 말씀을 주셨다.

그 말씀에 선생님은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존재인가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몇 해 전 스승의 날에 한 제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30여 년 만에 만난 제자는 세월의 무게만큼 이제 같이 늙어가면서 친구가 되어도 좋을 만큼 변해 있었다. 그런데 그 제자가 “선생님은 잊고 계시겠지만 선생님의 말씀 한 마디가 오늘날 저를 있게 했습니다." 하면서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필자는 너무 옛날 일이라 기억에도 없지만, 제자는 학생 시절에 체격도 왜소하고 남을 지휘하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돌아가면서 반장 역할을 하게 했고, 자신은 열심히 노력했지만 원래부터 약간 어눌한 발음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 ‘너는 잘할 수 있어’라는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힘을 얻었고 새벽부터 산에 가서 정말 열심히 연습을 했다고 한다. 그 결과 발음도 고치고 학교 생활에 자신감을 가졌으며, 오늘날 대기업 건설 현장소장까지 하게 되었다고 했다.

당시에는 제식 훈련이 체육 시간에 있던 때라 학생들에게 돌아가면서 반장 역할을 시킨 기억이 난다. 남을 지휘해 보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경험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자의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교사로서의 태도를 스스로 되새겨 볼 수 있었고, 필자가 선생인 것이 참 뿌듯하다는 생각을 했다.

오랜 교직 생활에서 많은 학생들이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인생이 바뀐 예를 수도 없이 보고 듣고 하면서 평소에 좀 더 잘했더라면 하는 후회를 하곤 했다. 아흔의 어머니가 일깨워 주신 농사일의 교훈처럼, 가르치는 일도 결국 학생들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함께 믿음으로 기다려주는 마음이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교직에서 멀어지고 보니 현직에 있는 후배 선생님들에게 간곡하게 부탁하고 싶다.

"아이들은 열두 번도 더 변하더라,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아이들의 인생을 결정짓는 것을 참 많이 보아왔다."

단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우리 교사들의 소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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