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머언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노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이 오지 않았나 보다
서정주 〈국화옆에서〉
거창 창포원에는 아날로그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4300여 형형색색 국화 화분이 가을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다.
그윽한 향기는 코로나19에 지친 영혼에 휴식을 부여하듯 발걸음을 붙잡는다.
‘오상고절(傲霜孤節)’의 꽃, 국화는 태사공(太史公) 사마천을 닮았다.
황제의 미움을 산 사마천은 나이 마흔여덟에 사형선고를 받았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살아남기 위해 죽음보다 더한 치욕인 궁형(宮刑: 생식기를 절단하는 형벌)의 선택 했다.
사마천은 고통과 치욕의 아픔을 52만 6500자 130권의 책, 중국 3000년 역사 기록물 《사기(史記)》로 승화시켰다.
생장이 멈추고 겨울을 준비하는 가을은 삶의 의미를 생각하는 계절이다.
세월의 강을 건너다보면 사연도 많고 기쁨과 슬픔도 있다.
선택한 결과물에 대해 책임지고 비겁하지 않으면 최소한 절반은 성공이 아닐까.
사마천은 “옛날을 보고서 지금 세상을 검증하고, 인간사를 참고하여 흥망성쇠의 이치를 살핀다”고 했다.
이 말은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에게 삶의 뒤안길을 돌아보게 하는 국화 향기다.
장석주 시인은 대추 한 알에도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가 들어있다고 했다.
필자는 바다보다 더 파랗고 넓은 창공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잘난 사람도 많고 대단한 사람들도 있다.그러나 가장 훌륭한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다.
서릿발을 견디면서 피우는 국화가 대접받는 이유와 같다.
가을, 국화 옆에서 삶의 거울을 보자.
거창경찰서 정보안보외사과 경위 문남용